삼겹살을 프라이팬에 얹혀놓은 것도 까먹은 채 TV를 보다가 갑자기 삼겹살 생각이 나 부엌으로 가보니 삼겹살은 이미 다 타있었다. 삼겹살 본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숯덩이마냥 온통 까매져 있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니….
일단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접시에 담아서 TV 앞 식탁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TV에서 보니 이렇게 탄 걸 먹으면 암에 걸린다던데. 삼겹살도 이게 마지막이라 더 구울 것도 없었고 지금 당장 너무 피곤하고 배고파 따로 요리를 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원래 고기를 먹을 때 몇몇 개 있는 탄 걸 먹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지만, 이번 건 너무 심했다. 하지만, 딱히 집에 구미가 당기는 음식도 없고, 아니 음식 자체가 거의 없는데다 삼겹살을 굉장히 먹고 싶기 때문에 젓가락을 들고 그 이상한 삼겹살 하나를 집었다.
집자마자 삼겹살 밑으로 까만 게 우수수 떨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꺼림칙했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닌 나는 그걸 입으로 가져가 씹었다. 이미 삼겹살 특유의 씹는 맛은 사라진 지 오래고 부석부석 사라지는 이상한 물질을 먹는 기분이었다. 삼키고 나서도 입 안에서 이상한 느낌이 감돌았다. 혹시나 싶어 한 개를 후딱 더 집어먹어 봤지만 역시 먹을 게 못 되었다. 더군다나 이 무서운 삼겹살들을 다 먹어봤자 배고픔이 해결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헹구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직도 그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냉장고로 가서 다른 먹을 게 있나 살펴보았다. 혼자 사는데다 먹을 게 다 떨어져 가던 참이긴 하지만 먹다 남은 콜라 한 병과 요구르트 2개를 제외하곤 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이 삼겹살들은 더이상 삼겹살이 아니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삼겹살을 또 먹었다. 또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물을 한 컵 마신 뒤 삼겹살을 바라봤다.
이건 도저히 먹을 게 못 된다. 평소에 음식물쓰레기를 거의 안 남기는 나이지만 이번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봉지를 들고 와서 남은 삼겹살들을 담았다. 일단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버리러 갈 힘이 없어 일단 베란다에 놓고 식탁에 앉았다. 뭔가 씁쓸했다. 저 삼겹살도 원랜 먹으려고 이 집에 갖고 온 것인데 먹기는커녕 내가 다 태워버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오히려 나에게 폐만 끼치고 쓰레기통으로 가버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조금만 더 쉬다가 삼겹살들을 버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이나 사 와서 데워먹어야겠다. 이대로 하루를 넘기기에는 너무 배가 고프다. 삼감 김밥은 삼겹살처럼 까맣게 타진 않겠지.
멍하니 있다가 몇 분 후, 밖으로 나왔다. 봉지에 있는 삼겹살들을 음식물쓰레기통에 다 털어버렸다. 다음부턴 삼겹살을 조금 신경써서 구워야겠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몇몇 개는 탄 것이 나올 게 뻔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