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봐도 끝이 너무 허무하네요..
리차드게이는 회사에서 힘겨운 업무를 하느라 오늘도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왔다.
털털 걸어서 안방에 온 뒤, 옷을 갈아입으려는 순간, 애인을 보았다.
ㅡ.... 당신.. 오늘따라 너무 예뻐보여.
리차드게이는 옷을 벗다말고 애인에게로 가서 서로 손을 잡았다.
ㅡ왜그렇게 차갑지..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그렇게 몇분을 꼭 같이 잡고있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얼굴이 빨개졌다.
ㅡ...
리차드게이는 과감하게 키스를 시도했다. 애인도 별 거부감없이 받아주었고 곧, 서로 손을 마주잡고 몇십분이나 계속 키스했다.
그리고 리차드게이는 갑자기 흥분해서 애인의 몸을 애무하려하다가 멈칫했다.
ㅡ아.. 미안해... 또.. 깜빡했어.
.........
리차드게이가 지금의 애인을 만난 것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날이었다.
회사도 옮기고 아파트에도 새로 입주한지 얼마되지않아 모든게 서먹서먹할 때였다.
그날도 신입생활이 고달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대충 훌훌 벗어재끼고 집 안으로 들어오다 신발을 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돌아섰다.
그 때였다.
리차드게이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첫눈에 반해버린다는 걸 느꼈다.
ㅡ아... 저...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그 모습은 바로 현관에 걸린 거울에 비친 리차드게이, 자신이었다.
현관의 거울은 꽤 널찍한지라 자신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리차드게이는 그자리에서 얼이 빠져 한걸음도 걷지 못했다.
그날부터 리차드게이는 그 좁은 집 곳곳에 크고작은 거울들을 놓고 항상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칠후, 리차드게이는 당당하게 고백을 했고 결국 리차드게이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
ㅡ우리 밥이나 같이 먹자.
리차드게이는 식탁에다 음식을 정성껏 차리고 식탁 앞에 거울을 갖다놓았다.
이렇게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TV는 보지못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기때문에 상관없었다.
식사를 마치고나자 리차드게이는 의자에 앉아 의자 옆에 거울을 놓았다.
옆을 돌아다보면 같은 의자에 앉아있는 애인이 보였다.
ㅡ당신은 티비 보는 모습마저 아름답군.....
샤워, 독서, 컴퓨터, 그리고 잠자리까지 리차드게이는 애인과 같이 즐겼다.
침대에 눕고 리차드게이는 옆을 딱 보자 애인이 누워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ㅡ잘 자요, 리차드.
리차드게이는 애인의 손을 꽉 마주잡고 잠에 들었다.
며칠 후. 리차드게이는 오래간만에 정말 친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게되었다.
ㅡ하하. 그런데 그 미친 놈이 똥을 싸다가 핸드폰을 입에 넣고....
모두들 반가워서 그간 못했던 얘기와 웃겼던 얘기들,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왁자지껄 밤새 얘기했다.
ㅡ그나저나, 모두들 애인은 있나? 호머는 벌써 결혼까지 했으니 뭐..
ㅡ아이구 내가 참 미쳤지. 결혼은 아직도 후회중이야. 여튼, 진짜 궁금하네. 모두들 있겠지?
한 친구가 핸드폰을 자랑스럽게 꺼내 배경화면으로 지정된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었다.
ㅡ우와! 엄청 미인이군!
ㅡ좋겠네 짜식.. 마이클! 너도 있냐?
그때, 한 친구가 질문을 한 친구의 옆구리를 푹 찌르고 귓가에 가서 조용히 말했다.
ㅡ뭐.. 뭐여..
ㅡ... 마이클 저자식 게이자너.. 몰랐나? 하긴 넌 몇년만에 오는거니..
ㅡ아... 그랬었나? 근데 뭐가 어때서. 남자랑 사귄다는 게 이렇게 숨겨야 되는건가?
그 말을 듣고 마이클이 용기를 얻고 말했다.
ㅡ그래. 난 동성애자야. 하지만 우린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구.
마이클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ㅡ와! 완전 미소년인데?
ㅡ게이.... 더럽긴하지만 멋있군.
ㅡ더럽긴 뭐가 더러워. 사랑이라는 건 어떤 제약도 없는거야. 마이클 보니 선남선남이 따로없구만.
모두들 한바탕 웃고나자, 이번엔 리차드게이한테로 관심이 갔다.
ㅡ리차드! 너도 있나? 넌 워낙 쑥맥이라 있으면 정말 대박인데. 너만 있으면 우리 다같이 커플동반모임도 한번 해도되겠구먼!
리차드게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ㅡ사실.... 나도 있어.
ㅡ우와아아아! 리차드도 있다니! 야야! 사진 좀 보자!
리차드게이는 머뭇머뭇거리며 부끄러워했다.
ㅡ이자식, 딱 보니 사귄지 얼마 안됐구먼! 뭐 지금은 됐고, 다음에 꼭 구경시켜줘!
ㅡ... 알겠어.
그렇게 리차드게이와 친구들은 밤새 놀았다. 중간에 호머가 궁금해서 리차드게이의 핸드폰을 몰래 열어봤지만 바탕화면엔 리차드게이 자신의 사진밖에 없었다.
ㅡ...응? 뭐여.. 아직 비밀커플인감...
리차드게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며 자책했다.
ㅡ전 정말 바본가봐요.. 당신이랑 사랑한다는걸 순간 부끄럽게 느꼈어요..
거울을 보자 동정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애인이 보였다.
리차드게이는 다시 거울을 껴안고 키스를 했다.
ㅡ앞으론 안그럴께요... 곧, 우리의 사랑을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말해줍시다.
어느 날, 직장상사가 리차드게이에게 어깨동무를 딱 하며 물었다.
ㅡ리차드! 혹시 여친 있나? 없으면 내가 한명 괜찮은 친구 소개시켜주지.
ㅡ...아..
리차드게이는 순간 망설였다.
ㅡ아, 저 애인 있습니다.
ㅡ아 정말? 난 몰랐지! 근데 회사 여직원들한테도 말을 잘 못거는 리차드가 왠일이래? 몇일됐나?
ㅡ오늘로... 곧 200일 됩니다.
ㅡ캬아.. 언젠가 한번 넷이 같이 술이나 하지. 나 곧 결혼할 건 알고있지?
ㅡ네..
리차드게이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애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숨긴채, 사람들에게 알리기시작했다.
곧, 리차드게이는 부모님에게도 말하게되었다.
ㅡ여보세요, 어. 아버지!
ㅡ어 리차드야.. 넌 장가를 대체 언제 가는게냐? 두 동생은 벌써 다 결혼했는디.. 일에만 집중하지말고 여자친구도 좀 만들어보고 그래보려무나. 아님, 이 애비가 선자릴 좀 알아봐줄까?
ㅡ아뇨.. 저 사랑하는 사람 있습니다.
어느새, 직장상사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시켜줄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리차드게이는 굉장히 초조해졌다.
ㅡ... 정말 어떡하죠.. 우린 사랑하는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리차드게이는 오랜시간 고민하다 결국 용기를 내서 식사자리에 가기로했다.
ㅡ리차드! 여기네!
ㅡ아.. 네.
리차드게이는 상당히 불안에 떨면서 상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사의 옆에는 곧 결혼할 꺼라는 상사의 약혼녀가 있었다.
ㅡ음.. 정말 미인이시군요.
ㅡ그래. 미인이지. 근데 너 여친은?
ㅡ저.. 그게...
상사는 리차드게이가 계속 망설이고 불안해하자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ㅡ아하! 이런 자리에 나오기 쑥쓰러운건가? 200일이나 됐담서! 안타깝구먼..
ㅡ저..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리차드게이는 가슴에 손을 얹혔다.
ㅡ바로 저 자신입니다.
상사와 그의 약혼녀는 순간 상당히 당황했다.
ㅡ... 허허 이 친구 농담도 참..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긴하지. 그렇지?
ㅡ그렇긴하죠.
ㅡ저.. 농담이 아닙니다. ... 전 진짜 저를 사랑합니다.
ㅡ.... .. 자네 진담인가?
ㅡ네.
상사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버렸다. 약혼녀도 많이 당황스러웠다.
ㅡ... 자네 지금 장난치나?
ㅡ아니, 장난이 아니라..
ㅡ됐네. 우린 가보지. 주문은 아직 안했으니 그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먹고 나오든가 맘대로 하게. ... 실망이군. 리차드게이.
상사와 약혼녀는 매정하게 자리를 떠버렸다.
리차드게이는 가만히 멍하게 있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뭔가 너무 부끄러워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
ㅡ... 우린 이해될 수 없는 사이인가봐요.. 그냥 우리끼리 사랑합시다...
거울을 보자 울고있는 애인의 모습이 보였다.
ㅡ... 울지말아요.
리차드게이는 애인의 손을 잡아줬다. 하지만 느껴지는 건 한없이 딱딱하고 차가운 거울일 뿐이었다.
ㅡ...
.
ㅡ여보세요.
ㅡ리차드야, 니네 둘이 동거한댔지? 한번 얼굴이라도 인사차 한번 보자꾸나.
ㅡ네? 어머니, 괜찮아요. 시간이 되면 소개하겠습니다.
ㅡ아니다. 우린 벌써 출발했어. 1시간 뒤에 보자.
리차드게이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저번의 수모를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부모라면 워낙 개방적이신 분들이라 이해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왕 일이 벌어진 거 리차드게이는 부모님을 맞이하기위해 집청소를 간단히 하고 자신의 애인을 소개해주기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곧, 부모님이 집에 들어왔다.
ㅡ리차드야! 오랜만이구나!
ㅡ네..
ㅡ그 친군 어딨니?
ㅡ아 방에서 잠시 뭐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리차드게이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ㅡ아, 좀만 기다리세요. 준비 좀 하고올께요. 두분은 과일 좀 드시고계세요.
ㅡ음.. 알겠다.
리차드게이는 방 안으로 들어와서 주저앉아버렸다.
10분 후, 리차드게이는 큰 거울을 낑낑 들고나왔다.
ㅡ어머, 왠 거울이니?
ㅡ음... 제 애인은..
리차드게이는 거울을 탁 바라봤다.
ㅡ저기 보이는 저입니다.
ㅡ...응? .... 뭔소리니?
ㅡ그.. 그러니깐. 전 절 사랑한다구요. 제 애인은 접니다.
부모님은 어이가 없었다.
ㅡ...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보았지만 왠 거울만 잔뜩 있었고,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않았다.
어머니는 표정이 심각했다.
ㅡ... 리차드야.
ㅡ..네.
ㅡ내가 동성애자까지도 이해할 수 있단다. 서로 사랑하는 거니깐.. 근데 이건 좀 아닌 것 같구나. 이건.... 사랑이 아니잖니.
ㅡ아니에요. 저흰 진짜 사랑해요!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서 리차드게이의 머리를 한대 쳤다.
ㅡ야 이자식아! 우리가 널 이런 병신되라고 이렇게 키웠어? 이 거울이 다 뭐니!
아버지는 앞에 보이는 거울을 밀어넘어뜨렸다. 리차드게이는 막으려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거울은 산산조각이 되어 깨졌다.
부모님이 떠나고나자 리차드게이는 바닥에 앉아 머리채를 부여잡고 깨진 거울조각을 바라보았다.
뒤죽박죽 왜곡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리차드게이는 소리내어 울었다.
ㅡ으흐윽... 흑흑... 흐윽! 윽...
리차드게이는 지금까지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는 한낱 거울에 불과했다.
그는 흥분해서 방 안의 거울들을 가져와 마루에서 마구 바닥으로 내팽겨치며 하나하나 깨기시작했다.
ㅡ저... 정말 사랑했는데... 정말 사랑했는데! 왜... 왜 아... 난 지금까지 뭐한거지.. 내가 했던 건 사랑이 아니었구나... 으아아아아아악!
미친듯이 거울을 깨다가 리차드게이는 실수로 넘어져 거울조각들이 가득 있는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ㅡ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리차드게이에게는 지금 거울에 온몸이 찔려 아픈 것보다,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절실히 알게된 마음의 고통이 그를 죽을듯이 아프게했다.
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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